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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켈빈의 재정의와 온도 눈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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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08회 작성일 20-01-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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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단위계 SI

측정 결과는 측정값으로 표현되는데, 측정값은 물리량의 크기를 나타내는 수치와 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 측정의 결과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대표적인 것은 국제단위계(SI : The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에서 명시한 단위들이다. 우리나라는 미터 협약의 회원국으로서 이 국제단위계를 따르고 있다. 국제단위계는 7개의 기본 단위와 그로부터 유도되는 유도 단위로 이루어진 일관된 단위계이다. 단위계는 그 자체로 과학의 진리이거나 원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과학자들의 전문적 조언을 바탕으로 국제적으로 합의한 약속이다. 그 약속은 필요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 2019년 5월 20일부터 국제 단위계 9판이 발효되면서 기본 단위 7개 중 4개가 새롭게 정의되었다. 이렇게 새롭게 정의된 단위는 킬로그램, 암페어, 켈빈, 몰이며 각각 질량, 전류, 온도, 물질량의 단위이다.

SI 단위계는 기본적으로 어떤 물리량의 수치를 고정함으로써 단위를 정의한다. 이것은 이번 개정 이전의 단위계나 개정 이후의 단위계나 마찬가지이다. SI 단위 정의를 위해 수치가 고정되는 물리량은 자연 상수, 원자 혹은 분자의 성질, 그리고 임의 상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개정 SI는 자연 상수 5개, 원자의 성질 1개, 임의 상수 1개의 수치를 고정시킴으로써 기본 단위 7개를 정의한다. 개정 이전의 SI가 자연 상수 2개, 원자/분자의 성질 3개, 그리고 임의 상수 2개의 수치를 고정시켜서 기본 단위를 정의한 것에 비하면, 기본 상수를 이용한 정의가 크게 늘었다. 물리학의 기본 성질인 기본 상수를 이용한 정의로 단위계의 정밀함과 완결함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이번 SI 단위계 개정으로 인해서 기본 전하, 볼츠만 상수, 아보가드로 상수, 플랑크 상수의 수치가 고정되었으며, 이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상수 역시(예를 들어, 볼츠만 상수와 아보가드로 상수의 곱인 보편 기체 상수) 고정되었다. 기본 단위들은 각각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정의에 의존 관계를 갖는다. 위의 그림이 각 단위가 어떤 물리량과 관계를 갖고, 서로 어떤 의존성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초(s)는 다른 단위의 정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미터, 암페어, 켈빈, 칸델라, 킬로그램의 정의에 영향을 주는, 기본 단위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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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의 단위 켈빈의 정의

개정 이전의 SI 온도 단위인 켈빈은 물의 삼중점을 이용한 정의였다. 즉, 물의 삼중점의 온도를 273.16 K로 고정함으로써 1 K의 크기를 물의 삼중점 온도의 1/273. 16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상활에서 많이 쓰는 섭씨 온도는 그 크기가 1°C = 1 K로 정해져 있음) 절대 영도(0 K)가 잘 정의되어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여 어떤 온도라도 정의하고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의 삼중점은 순수한 물이 특정 온도와 압력에서 고체(얼음), 액체(물), 기체(수증기)의 세 가지 상태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상태는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서 제대로 구현하고 보관하면 몇 달 동안이라도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켈빈의 정의를 위한 기준점을 얻을 수 있다. 물의 삼중점을 이용한 켈빈의 정의는 구현하기 쉽고, 높은 재현성을 갖고 있으며, 가시적이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서 켈빈의 정의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구현에도 매우 적합한 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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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의 삼중점을 이용한 켈빈의 정의는 크게 두가지 문제점을 갖는다. 하나는 동위원소 문제이다. 물 분자를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는 자연 상태에서 각각 두 가지와 세 가지의 안정적인 동위원소를 갖는다. 즉, 동위원소 구성 성분비에 따라서 같은 물이라도 “무거운 물”과
“가벼운 물”이 다양하게 존재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물의 삼중점은 사용한 물의 근원에 따라서 지리적, 계절적 동위원소 구성의 변화로 그 온도가 수만분의 1도씩 차이가 날 수 있다. 온도 측정의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발견하지도 못한 문제이지만,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서 동위원소 구성에 따른 물의 삼중점 온도의 차이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두 번째 문제는 온도의 단위를 정의하는데 “물”이라는 특정한 분자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물”은 지구나 인간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물질이기는 하지만, 광자나 전자, 양성자처럼 기본적인 입자가 아니다. 기본적이지 않은 화합물 분자인 “물”을 이용해서 온도의 단위가 정해진다는 것은 기본 상수를 이용하여 단위의 정의를 정하는 전체적인 흐름에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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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2019년 5월 20일부터는 “볼츠만 상수”를 이용하여 켈빈을 정의하게 되었다. 볼츠만 상수는 보통 물리학이나 화학의 법칙에서 기호 k로 표기되는 상수로서, 온도와 분자의 에너지를 연관시켜주는 비례 상수이다. 볼츠만 상수가 등장하는 수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이라고 불리는 PV = nRT 이다. 보편 기체상수인 R이 볼츠만 상수와 아보가드로 상수의 곱이므로, 이를 풀어서 쓰면 PV = NkT이다. 즉, 이상기체의 압력(P), 부피(V)와 분자수(N)을 측정했다면, 볼츠만 상수(k)와 온도(T) 중에 하나를 알면 다른 하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전의 정의는 물의 삼중점이 T = 273. 16 K이라고 정해졌으므로 이 정의에 따라서 k를 “측정”해야 했다. 이렇게 측정한 값을 바탕으로 과학자들은 이전의 정의로 가장 정확한 볼츠만 상수값이 k = 1.380 649×10-23 J K-1이라고 정하였다. 새로운 정의에서는 볼츠만 상수값을 정확히 k = 1.380 649×10-23 J K-1로 고정하였으므로 이 값에 따라서 온도 T를 “측정”한다.

그렇다면 이전의 정의해서 볼츠만 상수값을 어떻게 측정한 것일까? 기본적으로는 위의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과 같은 물리/화학의 법칙을 구현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k를 측정한다. 최근에 원리적으로 가장 높은 정밀도로 볼츠만 상수의 측정을 가능하게 한 방법은 “음향기체온도계”로 불리는 방법이다. 이것은 기체 내에서의 음속이 온도와 갖는 이론적인 연관 관계식을 이용하여 음속과 온도를 측정해서 볼츠만 상수를 측정한다든지, 알고 있는 볼츠만 상수와 음속 측정을 이용해서 온도를 측정한다든지 하는 장치이다. 세계 각국의 표준기관들은 이 장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물리적 원리를 이용하여 볼츠만 상수를 가장 정밀하게는 백만분의 0.5에 해당하는 상대 불확도로 측정하는데 성공하였다. 여러 가지 장치와 원리를 이용하여 측정한 결과를 종합한 결과 백만분의 0.37에 해당하는 정밀도로 볼츠만 상수를 확정하고, 이렇게 확정된 값을 이용하여 온도의 단위인 켈빈을 정의하기로 하였다. 그림 6은 세계 각국의 표준 기관에서 볼츠만 상수를 측정한 값을 모아둔 것이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아래의 “CODATA-17”로 표기된 값을 합의한 것이다. 따라서 2019년 5월 20일 이후부터는 볼츠만 상수는 더 이상 측정할 수 있는 값이 아니며, 진공 중에서 빛의 속력과 같이 정확하게 정해진 값이다.

켈빈 재정의의 파급 효과와 앞으로 예상

그렇다면 2019년 5월 20일 이후에는 온도 측정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리가 과학 실험실이나 산업에서 쓰고 있는 온도계와 온도 측정 장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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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당분간은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볼츠만 상수를 이전의 정의에 의해서 충분히 잘 측정해서 정의를 바꾼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1 K의 크기는 백만분의 0.37 이내에서 바뀌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우리가 걱정할 필요없는 가장 큰 이유는, 켈빈의 재정의에서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국제온도눈금-1990”이라는 온도 눈금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온도눈금-1990(줄여서 ITS-90라고도 함)은 온도를 그 정의와 최대한 가깝게 측정하고 보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눈금 체계이다. 현재 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온도 관련 교정성적서는 이 ITS-90를 기준으로 해서 발행된다. ITS-90를 우리가 여전히 사용하는 한, 단위 재정의 이전에 발행되었던 교정성적서도 유효하며, 온도 계측 장치에 입력해 두었던 온도계 계수(저항 측정 결과를 온도로 환산하기 위해서 입력하는 계수)들도 모두 유효하다. 따라서, 원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전혀 켈빈의 재정의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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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ITS-90가 폐기되지 사용될 것인가? 온도 측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ITS-90를 개정할 것인지, 혹은 일차 온도계를 서서히 많이 쓰면서 ITS-90를 서서히 사라지도록 할지는 논의 중이다. ITS- 90은 1990년을 기준으로 한 과학적 지식으로 온도 눈금을 근사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온도와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상온 근처에서 실제 온도와 ITS-90 눈금 온도와의 차이는 약 3 mK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요즘의 가장 정밀한 온도계로 쉽게 잴 수 있는 상당히 큰 온도 차이다. 이러한 차이를 보정하는 새로운 온도 눈금을 개정하여 사용한다면 실제 온도에 더 가까운 온도 측정과 보급을 할 수 있지만, 온도 측정과 관련된 많은 측정 장비, 소프트웨어, 규격이 개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혼란과 비용을 걱정해서 실제 온도와 ITS-90 눈금의 차이를 기록하고 공표하되, 섣불리 온도 눈금을 개정하지는 말자는 목소리가 아직은 지배적이다.


iyang@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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